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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문학/시

애완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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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총애를 받으신 몸
저는 아무것도 안 한 놈
다른 오리들이 당신을 욕해도
당신은 내게 좋은 것만 주었죠

몇일이라고 짚을 수 없는 날에
꽥꽥거리는 소음은 어느새 잦았고
문득 그 오리들 하나둘씩 사라진 걸 눈치채도
당신은 내게 삶이란 축복을 주었죠

몇일이라고 짚어도 의미 없는 날에
날개 끝은 다쳤지만 당신은 날 구했고
다른 오리들이 훨훨 날아가는데
파닥이기조차 허전해서 멈췄을 뿐

당신은 나도 할 수 있다고 했죠
만나와 사랑과 좋은 것만 주었죠
그만큼 못 부응해 미안한 적도 있죠

이젠 하늘을 바라보지도 않죠
고개는 동동 구르던 발 밑만 향하죠
하늘이 비친 물속에서 나는 나
바다나리 따라간 아기별 찾죠

난 고기가 아니니까 땅이 집이죠
사토와 시오와 스파이스를 먹고
그리고 모든 멋진 것을 입고
진흙탕에 돌아가듯 물에 적시죠
이젠 미안하지만은 않으니까요

말 안 듣는 칼은, 살처럼 날랜 날은
사실 당신이 쥐고 있었다는 것을

앞으로도 날 수 있다고 하겠지만
앞으로도 저만은 살리겠지만
앞으로도 좋은 것만 주겠지만
제가 행복에 다 잊고 파닥이기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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