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거대한 냉동고. 냉동인간들은 시간도 얼어붙었다. 임시보관한 냉동육 두 점의 원래 상태는 몰라도, 더 이상 상하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하다.
저체온증은 어느새부터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 얼어죽은 자는 더 이상 떨지 않는다.
그저 내 손이 떠는 것은, 이곳이 설녀의 전시장이 되진 않을까. 그것이 두려울 뿐이다.
눈사람들은 아직 나를 못 찾은 것 같다. 적어도 지금은 계속 헤메고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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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나의 불치병은 학계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발병 시기는 역설적이게도 의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부터였다. 나는 점점 차가워졌다. 특히 손이 차가웠다.
늙은 의사는 수족냉증이라고 했다. 헌데 점점 수족냉증을 넘어서 내가 만지는 것도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초기엔 단순히 열의 전도에 의한 것이라고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초등학교 때 팩에 담긴 주스를 마시는데 점점 액체였던 것이 슬러시가 되는 것이었다.
그 때야 초등학생이니까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자랑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 때도 너무 커버렸던 것 같다.
이 대단한 능력을, 늙은 의사는 병이라서 수술로 없애버릴 수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병이 맞았다. 이 능력이 점점 커지면 물도 못 마시고, 악수라도 했다간 사람을 얼려버릴 수도 있다.
당시에도 간혹 엄마의 상냥한 말 속에 물뱀같은 차가움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혹시 내가 엄마를 차갑게 만들어 버린 건 아닐까.
현실에서 물체를 얼리는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당연히 수술로 없앨 수도 없을 테다.
어쩌면 영화에서 으레 나오듯, 이상한 아이라고 괴롭히거나 연구자들이 안 좋은 실험을 할 지도 모른다.
이 병이 드러나지 않길 바랬다. 이 능력을 원하는 대로 조절하긴 바랬다. 적어도, 지금 들고 있는 슬러시가 못 먹을 만큼 얼지 않길 간절히 바랬다.
다행히도 슬러시는 더 이상 얼지 않았다. 혹시 능력을 조종할 수 있는 걸까? 녹아라, 얼어라, 마음 속으로 간절히 주문을 외웠더니 그대로 되었다. 끝나고 나니 꽤 힘들었지만.
그 뒤로 나는 내가 닿은 것들이 차가워지려고 하면 온몸에 힘을 주며 주문을 걸곤 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힘은 덜 들었다. 대신 모든 음절에 강세를 주어 말하듯이 살아갈 뿐.
결국 나의 비밀은 다행히 드러나는 일이 없었다. 대신 방에 도착하면 힘을 마음껏 풀어도 되었다. 그렇게 내 방에는 얼어서 작동하지 않는 신디사이저, 스스로 깎아본 토끼모양 냉동 사과, 인형 대신 얼음 조각이 몰래 쌓여나가면서 방 전체가 얼음장처럼 변해가곤 했다.
하지만 내 몸이 자란 만큼 능력은 설인처럼 거대해져만 갔다. 능력은 고드름같이 자라나 나를 찔러댔지만, 차가워서 이내 무덤덤하게 고드름들은 날 점점 깊숙이 박히고 있었다.
음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김이 나는 사골국도 내 입안에 넣기 무섭게 냉동식품이 되어버린다. 혀 자체도 얼었는지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젠 어릴 적 주스처럼 녹지도 않고 녹일 생각도 없다.
공중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 물이 얼면 누가 볼까 무서웠다. 악수를 하면 상대방이 차갑다고 할까 무서웠다. 다시 병을 걷잡을 수 없다면 어떡하나, 울면 그나마 시원하겠지만 눈물도 눈물샘 안에서 얼어버린 듯하다.
어른과 아이의 사이에서 곧 어른을 택해야만 하는 나이가 되었다.
이대로 괴물이 된다면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작은 얼음방이 아니라, 세상 전부에 대항해 얼음 성벽을 세우고, 프랑켄슈타인처럼 홀로 북극 속을 헤메며 사라지고 싶었다.
그렇게 처음 생각했을 때, 눈보다 하얀 세상에서 초대장이 왔다.
니고에서 작업 중, 메일로 untitled라는 파일이 도착했다. 그 땐 카나데가 스케치를 한 줄로만 알고 클릭했다.
순간, 모니터에서 환한 빛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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