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상상도 못한 해외 여정 중이다.
허리에는 귀중품만 따로 담은 크로스백을 꼭 맨 채,
기내에서 이모와 채팅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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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모범생 내지는 범생이로 알고 있는 이 "고3이 집나갔다".
이유를 물어본다면, 인간 사회에 불만 있다고 답하련다.
그렇다고 내가 무인도라도 가고 있는 건 아니다. 원래대로라면 부산에 내려가려 했다.
그저 아빠를 피할 수 있으면 되었다.
아빠가 날 패거나 한 적은 없다.
사실 불만 있다고 가출까지 감행한 진짜 이유는,
오빠가 의문사했는데 그 범인이 아빠인 것 같다.
하지만 진짜인지 알아내고 싶어도,
아들도 죽인 사람이라면 진범을 찾아내려는 딸을 못 죽일까.
부산에 사촌언니가 있긴 하지만 사이가 안 좋아서 집 나가면 어디서 묵을까 고민하는데 멀리 외국 사는 이모가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통화하다가 내가 방심했는지 내가 가출할 건데 어떻게 살지 고민이라고 털어놔 버렸다.
이모가 걱정해주는 것까진 예상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모가 비행기랑 여행 경비라며 돈을 보내주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다.
이모가 넓은 집에 혼자 살고 부자시긴 하지만 바로 오라고 할 줄이야.
사양하려 했지만 집나간 애가 갈 데가 있겠나. 국내에 있으면 언젠가 아빠가 날 찾을 수도 있으니.
어차피 갑작스럽게 바뀔 삶이면 외국이라도 가기로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이름은 팽은아, 성별은 여성, 목적은 친척을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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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도착하고 나서 이모가 사정이 바뀌면 난 어디서 살지 고민이다만 일단 외국어는 잘하니. 뭐라도 하며 살아가겠지요.
라고 보내는데 메시지가 계속 전송되지 않는다.
와이파이를 껐다 켰다 하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닌지 다들 인터넷이 안된다고 컴플레인을 걸었다.
승무원은 인터넷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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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기장은 갑자기 전파가 끊기고 내비게이션이 작동하지 않아 수동으로 비행을 전환하고 있었다.
갑자기 델린저 현상이라도 생긴 건가, 했지만 동시에 날씨마저 세상 종말할 듯 급변했다.
설마 우리가 도시전설에 나온 돌풍 지대에 휘말린 건가,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어떤 통신도 닿지 않고, 돌풍과 해일이 벽을 이루고 있어서 휘말리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곳.
그리고 알아챈들 이미 늦었다고.
비행기는 발버둥치지도 못하고 폭풍에 휘말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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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차리고 보니 우리는 거대한 뭔가에 타고 있었다. 위에는 타타타타 하는 굉음이 들린다.
어떻게 빠져나갈지 고민하는데 갑자기 바닥이 흔들리더니 출구가 열렸다.
강풍과 함께 세찬 비가 들어오는 새로 인간들이 짐을 던져 버린다. 짐이 까마득한 하늘로 빨려들었다.
딱 봐도 위험해보이지만 이때를 틈타 아직 기절한 테르테르를 안고 탈출했다.
구슬의 힘으로 떠서 돌풍을 헤쳐 나가려 했지만 날개에 총을 맞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 빙글빙글 돌며 바다로 추락할 뿐이었다.
겨우 니얀다처럼 됬는데...
"살려줘-!"
"살려줘-!"
하지만 니얀다는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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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비행기 속에서 필사적으로 빠져나왔다. 레비아탄이라도 나타난 듯한 파도 속에서 판때기 잡고 버티고 있는데 돌풍 속에서 무슨 비명소리가 들린다.
큰 박쥐 한 마리가 인형을 안고 허우적대고 있었다.
TV로만 보던 니얀다였다. 허상이겠지만 혹시 모르니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던져줄 걸 찾았는데, 급하게 나오느라 아직도 가방이 허리에 무사히 붙어 있었다.
가방끈을 최대한 늘려서 박쥐에게 던졌다.
하지만 파도가 워낙 험해서 끈이 애타게도 요동친다.
최대한 다가가지만 멀어지고, 가까워지나 싶으면 멀어지다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잡혔다!
월척이라도 낚은 듯 가방을 당겨대자 박쥐는 비틀비틀 기어와 판 위에 올랐다.
날개에 총을 맞은 박쥐는 몸에서 구슬을 떼내더니 내 손에 쥐어주곤 힘이 스르륵 풀렸다.
급한 와중에 이건 왜....
어?
"나다! 나다! 니얀다 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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