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좁은 굴에 개미 한 마리가 살았습니다.
개미의 집엔 열심히 모아 소중히 간직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보기 드문 과자와 아껴둔 사탕, 흙처럼 색바랜 책들, 좁아 보여도 개미한테는 넓은 침대...
하지만 개미는 모든 게 필요 없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물건들 때문에 굴이 더욱 더 좁게 느껴질 뿐이었으니까요.
개미는 자기가 가진 모든 걸 남들에게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물건들이 굴 입구를 꽉 막고 있었습니다.
개미는 열심히 물건들을 헤치고 나온 끝에 드디어 출구에 다다랐습니다.
바깥의 햇살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눈부셨던가요.
개미는 눈살을 찌푸리며 오랜만에 길을 나섰습니다.
땅 위에는 모든 게 밝아 보였습니다. 모두들 표정이 밝아 보였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든 땅 위는 항상 밝은 걸까, 어두운 땅 속을 따가운 햇빛으로 밝히면 눈부시니까 땅 위의 모두를 더 밝게 하는 편이 나을 거야. 개미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개미는 땅 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물건을 팔았습니다.
책방에는 책을, 인형 가게엔 인형을, 목수에게는 침대랑 가구를.
그렇게 번 돈도 쓸모없어서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팔 수 없는 건 필요한 사람을 찾아다가 나눠주고, 나눠주기에 너무 낡은 건 고물장수에게 팔았습니다.
고물장수가 준 엿은 자기가 갖고 있던 과자랑 사탕과 함께 아이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하루가 끝나는지, 서늘한 바람이 개미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습니다.
개미가 누구야 하려고 고개를 들어보니, 고물 창고에서 고물들 사이로 노을이 잦아들고 있었습니다.
해도 빛을 다 내놓고는 땅 속으로 돌아가는 걸까.
이제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개미는 오늘 새로 쌓은 추억만 있었습니다.
잘 안팔리던 그 책이 팔릴때 후련하면서도 참 아쉽더란 말이지.
책방이랑 인형가게에 새로 나온 책이랑 인형이 그렇게 많았지.
목수가 우락부락해 보여서 무서웠는데 맘씨는 상냥했지. 길가에 새로 돋아난 꽃이 파릇파릇하더지.
아직 길에 남아있는 낙엽이 바삭바삭하더지.
파랗게 개인 하늘을 올려보면 위로 쏙 떨어질 거 같더지.
돌아다니니까 기분이 풀린 걸까요. 아직도 빨갛게 물든 노을은 적적한데.
한두번쯤은 더 밖을 돌아다니며 살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개미에겐 햇살은 따갑고 저녁은 차갑지만요.
하지만 이제 개미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당장 먹을 저녁조차 다 나눠주고 없었습니다.
개미는 배고파하며 허탈하게 노을만 바라봤습니다.
노을 속에서 무언가 반짝였습니다. 별이 떴나 했지만 고물 더미에서 반짝이는 것이었습니다.
고물을 헤치고 찾아보니 고물 틈새에서 떨어진 동전 한 닢이었습니다.
작은 과자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을까 하고 동전을 꼭 쥐고는 시장을 찾았습니다.
들어본 듯한 목소리가 개미를 불렀습니다. 아까 먹을 걸 나눠줬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시장에 있던 사람들은 자기 아이들한테 소식을 전해듣고 고맙다며 개미들에게 자기가 팔던 것들을 조금씩 먹어보라고 주었습니다.
덕에 개미는 이것저것 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가도 아무것도 없겠지만 살 만할 때까지는 계속 살 수 있을까요.
개미는 돌아가는 길에 돈을 나눠 주었던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언젠가 은혜를 꼭 갚겠다고 했습니다. 개미는 집에 침대가 없어져서 잠자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드. 가난한 사람은 어릴 때 쓰다가 작고 헤어져 안 쓰는 흰 이불을 주며 덮을 순 있을지 걱정했습니다. 개미야 좋았습니다. 자기한테는 크고 넉넉하니까요.
차가운 밤 속에서 개미는 따듯한 이불을 몸에 둘러매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온 하늘이 동전처럼 반짝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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