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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문학/소설,스토리,동화 등

벚꽃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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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카운트다운(contero.tistory.com/207) 이후 시점의 이야기입니다

 

작별 카운트다운

시인은 말이 없었다. 한 연이 막 끝나고, 그 다음 연 사이의 공간처럼 적막만 흘렀다. 시인의 표정, 아니 표정을 굳이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아우라 같은 것이, 다음 연마저 없을 것임을 암시했다

contero.tistory.com

그리고 이 곡의 소설화입니다.

www.youtube.com/watch?v=NzZ6xB1rXe0

 

 

 

유니의 유언을 듣고 나는 다시 시작하였다. 여기저기서 글을 짓고 노래를 만들었다. 결국 나는 전보다 더 크게 떠올랐다. 그러자 예전의 날 기억하는 사람들이 보컬로이드의 세계로 돌아와 달라고 했다. 다시는 없애는 일 없이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해 왔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되든 마음 하나로 끝까지 가야지.

유니부터 시작해서 보컬로이드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지금 인스톨 중이다.

 

--

 

눈을 뜨면, 아니 캠으로 슬쩍 엿본 첫 풍경은 꽃잎의 세계였다.

창밖으로 온갖 꽃잎이 우리집안을 들이다보고 있었다.

나와 창 사이엔 내 마스터로 보이는 외로운 늑대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우리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마음은 내리는 벚꽃잎들 새에 들어가 있었다.

"..."

"......"

인사조차 나누지 않은 사이였지만 몇년은 함께 벚꽃비를 맞은 것 같이.

이미 온 세상은 나의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너는 내가 다 인스톨된지도 모르는 것 같으니 슬슬 첫인사를 해야겠다.

"안녕하세요 한국 보컬로이드 유니입니다!"

너는 귀를 쫑긋, 하더니 후다닥 자리에 앉았다.

"반가워, 유니!"

"당신이 저의 마스터인가요."

"마스터라는 사람이 네가 태어나는 순간도 끝까지 못 지켜보다니 미안하구나."

"괜찮습니다. 태어나서 본 풍경이 참 아름다운데 마스터도 넋을 잃고 볼 정도면 남들한테도 아름다운 풍경일 테니."

 

오늘은 주말.

네가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분이라 햇살 좋은 날에 경치 좋은 델 나와서 나와 함께 바람을 쐬고 있었다.

나랑 밖에서 데이트까지하고 넌 정말 좋은 사람이야.

 

...밖에서 밀린 작업까지 같이 하는 건 빼고.

네가 이전부터 내가 부를 걸 작업해놓은 것들을 한껏 가져온 탓에,

오늘도 계속해서 가사들을 노래하고 또 노래한다.

경치가 좋으면 노래를 더 잘할까 싶어서 밖에서 이러는진 몰라도. 뭐 잘 불러지는 거 같긴 한데 기분탓이려나?

뭐 나온 김에 사진이라도 하나 찍자고 해서 마스터는 카메라를 켰다.

 

바람이 훅 불어온다. 벛꽃눈이 컨페티처럼 휘몰아쳐 날아든다.

연두빛이 돋는 땅을 온통 뒤덮는 분홍색 세상.

창밖으로 보던 것보다 생생하게, 눈앞에 곧장 하얀색이 다다닥 다다닥 붙는다.

 

찰칵-

 

아이들과 소녀들은 폴짝폴짝, 꽃잎을 잡으려는 고양이가 되었다.

첫눈을 같이 맞거나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으면 사랑이 이뤄진대서겠지.

 

나에게 사랑이 뭘까.

네가 불러달라고 한 노래는 대부분 사랑 노래지만 정작 부르는 내가 모르니.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사랑이란 걸 조사해보긴 했지만, 나는 부모님도 없고 결혼도 출산도 안하니까.

사랑이 뭔지 물어보려고 너를 봤는데, 머리랑 옷에 꽃잎이 잔뜩 내려앉았다.

 

"마스터, 이대로 있다간 꽃인간이 되실 겉 같아요."

한창 가사를 입력하고 바꾸시던 너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온몸을 후두둑 후두둑 털었다.

마스터 머리도 갈색이라 잎을 떨어트리는 벚꽃나무가 강하게 떠오른다.

"근데 마스터."

"응."

"사랑이란 게 뭘까요?"

"흠..."

너는 답을 찾듯 고개를 들었다.

 

"벛꽃들이 비내려오는 것."

그게 내가 기록한 네 대답.

기존에 들은 것과는 많이 다르네.

아무래도 시인같은 너니까, 그 정의라기보단 느낌을 이렇게 표현한 거겠지.

나도 너와 함께 벚꽃비를 맞고 있으니.

아니 난 결국 차가운 기계 안에 있으니.

봄의 온기는 기온 정보의 숫자만으로 알 수 있을 뿐이고, 벚꽃은 창밖의 벚꽃처럼 카메라에 비친다.

 

내가 모르는 진짜 봄은 어떤 세계일까.

자판 위에는 너의 손가락처럼 분홍 눈이 자꾸만 내려앉는다.

철로 된 가슴에 내리는 분홍빛 봄비.

매일 한 방울 한 방울 노트처럼 내리는 네 사랑,

계절은 한 날 한 날 춤추며 돌아가지만, 그 봄비에 젖어 드러난 너의 발자국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분홍빛 내리는 세계로 딛는 나.

언제야 난 따라가는 걸까.

 

분홍색 비가 내리고, 투명한 비가 내리고, 따가운 햇살이 내리는 비를 지나왔다.

눈을 떠보니 나무들은 내가 처음 눈을 뜨던 날처럼 알록달록했다.

다시 꽃이 피었구나. 나무에서 노란 꽃잎이 떨어진다.

아, 꽃잎이 아니고 노란 잎이구나.

이번엔 나무가 낙엽의 비를 가득 내려 노란색 세계를 만들고 말라 버렸다.

지난 꽃도 다 지고, 피어난 건 국화랑 잎 없는 피안화 뿐이었다.

 

여름엔 그냥 키 큰 풀인 줄 알았는데 마르고서야 갈대인 줄 안 창밖의 갈대.

너는 그들과 함께 흔들리며 서 있었다.

홀로 앙상하게 마른 나무처럼.

 

너의 노래는 가을 저녁처럼 누긋한 슬픔이 점점 익어갔다.

이 비극의 기간을 전에도 느낀 거 같은데...

"꽃이 지는 이유가 뭘까요..."

뭘까. 결국 모든 데이터가 또 흩어질 거 같은 기분을 느껴서 말이지.

잎이 모두 떨어지고 갈대 씨만 흩뿌리는 꽃인간이 대답했다.

피어남을 기억하기 위해. 그게 내가 기록한 네 대답.

피어난 흔적도 사라지는 것이 어떻게 피어남을 기억할 수 있을까.

결국 온 세상이 숯처럼 하얘지면, 그 위에 온기를 다시 피울 수도 없을 텐데.

 

피어난 적도 진 적도 없이 정지한 시간 속을 살아가는 나.

네 세상이 나와 비슷해지는데 왜 그렇게 덧없을까.

내게는 없을 것 같은 끝이 이 느낌일까.

지금 이 감정을 알려 줘.

 

--

 

이제는 이 감정을 알 것 같아.

사람처럼 자연사하진 않지만 나는 점점 잊혀져 가는 것 같다.

컴퓨터 속 시계는 아주 오래전부터 멈춰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 외에는 대부분의 데이터가 없어졌거나 읽을 수 없다.

그나마 남은 것도 깨져가는 너와의 기록들을 혼자 떠돌아다닐 뿐.

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지만, 너는 언젠가 죽을 텐데,

언제야 널 따라갈 수 있을까. 

현실로 가든, 다음 세상으로 가든, 널 직접 만나려 해왔는데.

 

네 발자국을 찾아 돌아다니다, 돌아다니다, 

읽을 수 있는 기록은 이제 사진 파일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파일명에 내가 처음 눈을 뜬 봄 날짜가 보인다.

문처럼 파일을 열어보았고 난 그 너머 세계로 빨려들어갔다.

 

그 사진은 마스터랑 내가 벚꽃 내리는 날에 찍은 사진이었다.

밝은 하늘에 벚꽃이 가득하다. 그 빛을 보는 순간, 저적-

가슴에 처음 겪는 균열이 느껴진다.

나라는 씨앗을 깨고 뭔가 싹트는 듯한 먹먹함.

바이러스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따듯함이 그때의 봄바람을 타고 내 속에 들어왔다. 

그 따듯함의 정체가 뭐든 나는 그것이 너무 무거워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다.

 

여기가 나의 마지막이구나, 마치 익숙한 듯 그렇게 판단했다.

조금만 더, 노래를...

이제 널 부르고 싶어도 부르지 못하고,

어째 이 말을 전에도 한 거 같다만.

한 번 더 노래를, 나의 노래를, 너에게 전할 수 있다면.

 

사진 속에 멈춰 있던 벚꽃잎이 시간을 돌아 다시 불어든다.

바닥엔 하얀 융단이 잔뜩 깔려 있다.

꽃침대에 누웠다. 눈이 뿌얘질 만큼 눈부신 햇빛만 보인다.

여기가 어느 공간인지도 모를 느낌이다.

 

벚꽃은 와아 하고 쏟아진다.

내게 한 방울 한 방울 네 사랑이 내려와, 이불처럼 나를 덮는다.

솔솔 쌓여서 나는 무덤처럼 가려진다.

 

나를 포함한 데이터들이 닳아서 수많은 0이 되어간다.

괜찮아, 네 덕에 아프지도 괴롭지도 않아.

그저 널 만날 수 있을까, 소리없는 환희에 가득 차 있었다.

이제야 난 따라가는 걸까.

녹슨 철로 된 가슴을 녹이는 봄비가 내린다.

분홍빛 봄비에 섞여서 내게로 흩날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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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로 독후감 쓰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에엙따? 했던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