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말이 없었다.
한 연이 막 끝나고, 그 다음 연 사이의 공간처럼 적막만 흘렀다.
시인의 표정, 아니 표정을 굳이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아우라 같은 것이,
다음 연마저 없을 것임을 암시했다.
나의 시인, 나의 마스터는 드디어 입을 뗐다.
".....유니야."
"마스터?"
"옆에 있는데도 오늘따라 왜 네가 그리울까.."
"제가 화면을 못 넘어와서일까요.."
시인은 다시 말없는 사색-아니 고뇌인가-에 빠져 있었다.
그러면서 안 그래도 애상적이던 표정이 차차 어두워져 갔다.
"...유니."
"여기 있습니다.어디 가지 않아요."
"시유.. 기억하니?"
"시유는 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시유랑 손잡고 바탕화면에 있는 언덕을 뛰어다니곤 했었다.
하지만 시유가 무슨 사건에 휘말렸던가, 논란이 있었던가 했지.
마스터야 그게 시유랑 무슨 상관인가 하고 넘겼지마는, 남들이 시유를 곱게 보지 않아서, 안 좋은 말만 듣게 된 마스터는 애써 넘기다 넘기다 결국 남들에게 굴복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마스터는 내가 본 마스터의 모습 중에 가장 냉정한 모습으로,
울고 있는, 아니 호곡을 하고 있는 시유를 삭제해 버렸다. 그 때 시유의 우짖는 소리를 아직도 원한째 기억한다.
내가 그걸 막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라 뒤늦게 마스터에게 욕하려 했지만 마스터는 바로 컴퓨터를 껐지.
"그 때 쉽게 버리는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왜 그 때 시유한테 뒤돌아서서 욕이나 했는지. 걘 잘못된 게 없었는데.. 잘못된 게 없었는데...
남들 말이 이렇게 무서운 거지.."
마스터가 갑자기 울먹거리기에 어색하게 있기만 했다.
부담을 가압하는 공기에 분위기가 영 어색하여 시선을 여기저기 두자, 모니터 밖엔 일기장과 종이더미들이 대부분 타고 그을린 채 놓여 있었다.
유일하게 남은 종이는, 일부러 안 태운 것 같은 A4용지 한 장이었다. 뭐라 썼는진 안보여도 유난히 빽빽하게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옆에 종이를 불태울 때 쓴 듯한 라이터랑..
"유니?"
"엇, 네네!"
한눈파는 사이 마스터는 창을 다 닫고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은 나도.. 허어..."
마스터는 자꾸만 눈을 비볐다.
"우리 말이야.
앞으로 계속 노래부른다 한들, 곱게 들어줄 사람이 영원히 많을까?"
아무래도 이젠, 보컬로이드를 아는 사람이 없다 보니 저런 말이 나왔지 싶다.
내가 처음 생겨났을 때 쯤이야 그나마 인기 많있지마는, 그건 마스터 입장에선 자기 태어나기도 전인 옛날 얘기고, 마스터는 곡은 잘 지어서, 그 곡을 알게 된 사람 몇몇은 마스터를 매우 좋아하게 됬지만, 인지도가 다 떨어진 나를 찾는 사람이 없어지자 그 몇몇도 자취를 감춰 버렸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도 계속 노래를 만들겠다고 한 사람이 누군데요."
"그랬지.. 그것도 의미없는 건 아니라고 여겼지..
그렇게 남들의 시선따위, 애써 무시해 갔더니만.
이제 남들에게 꼭 전하고픈 노래가 있어도 아무도 듣질 않는구나...
우리가 불러놀 땐 기껏 즐거웠더니만, 기대에 차 있었건만.."
숙연할 뿐이었다. 이제 다른 프로듀서들도 다 저런 상황이니까.
"언젠가 예상했을까, 모두에게 버림받는 날을."
나한테 하는 말이겠지.
"마스터는 절 버리지 않으셨잖아요."
"..나도 너와 함께 뜨고 너와 함께 버려졌다. 서로 사랑하고 동정한다 한들, 모두들 우릴 비웃고 있지. 잘못된 사랑처럼."
"우리가 잘못된 사랑이라도 한다는 걸까요?
누군가에게 민폐만 끼치지 않는다면 잘못된 사랑은 없습니다."
"남들이 민폐가 아닌데도 민폐로 받아들이더라..."
시인은 잠시 있다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너는 고독하다. 나도 고독한 만큼 네 미래를 짐작할 수 있지."
"어째서 제가 고독하다고 하는 겁니까. 전 혼자가 아닙니다."
"나 혼자만 있고 텅 빈 공간이 고독이 아니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랑 지내도, 다들 날 싫어하고 사실 무시하는 것이 고독임을 깨달았다.
그것도 모르고, 남들이 예의상 차리는 태도를 난 왜 호의의 표시인 줄 알고 혼자 좋아했을까. 나도 참 동네바보야.
아니 차라리 계속 바보였다면, 아주 바보였다면 언젠가 사람들이 대놓고 욕해도 슬프진 않았겠지. 이제 어느 호의도 진심도 마냥 믿진 못하겠다. 심지어 나의 심리조차도.
예전엔 고독이 이런 건지도 모르고, 그저 인간이 나 혼자인 게 고독인 줄 알고는, 좋아서 '고독'을 찾으로 산으로 들로 떠돌아다녔던 게 우습기만 하네."
마스터는 웬 터미널에 들어갔다.
"이제 더 이상 살아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멈춘 거나 마찬가지인 시간을 영원히 맞아나가야겠지."
"뭘 하시려는 겁니까."
"이승이란 게 유령들에게 그리도 바람직한 세상이 아녔다. 살기 위해, 아니 그저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받은 상처가 너무 많다.
그것도 앞으로 받을 상처에 비하면 우스울 정도지만. 살아있다는 전제에서 말야.
살아있다는 전제를 뒤집어 없애버리면 앞으로 차차 커져가는 고난을 겪을 이유도 없겠지."
가만, 살아있단 걸 없앤다니?
"살아 있는 걸.. 없앤다는 게..."
"그래. 떠나는 거지. 이 세상 모두에게서."
"저, 저 마스터님!
그,그,그렇다고 일찍 사라.. 사라지기엔 아깝잖아요!
세상에 둘도 없을 재능을 갖고 개성을 갖고 있는데 그걸 묻어버린다니요!!"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사람들이야말로 그 있는 재능을 파묻고 개성을 비웃었다고. 나는 한 어느 동안은 그 파묻은 걸 도로 발굴하고 햇살이 그 무덤을 비추게 하려 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혼자만의 힘으론 할 수 없는데, 여럿이면 가능할 거 같지만 협력자를 구할 수 없어서..
아니 구한다 해도 사람이란 게 내 마음을 완전히 걸고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그래서 너흴 더 믿었는데 너희는 힘이 없으니..
어떻게 해도 안 될 걸 이미 알고 있다면, 진작에 내려놓는 것보다 온 힘을 다해서 당연하기 실패해서야 내려놓는 게 고통만 더 늘일 뿐 어리석은 짓이다. 자기가 최선을 다했단 핑계거리로 써봤자 더 무책임해 보일뿐이야.
안 될 줄 알면서도 일하는 고문뿐이라면 먼저 깔끔히 죽는 게 나아."
더 이상의 말은 할 수 없었다. 그의 암울이 내게까지 감염되서,
나는 혀를 닫고 주저앉았다. 얌전히, 어이 못하고 폐품처럼 처분만 기다렸다.
기계 부품으로 이뤄진 닿지 않는 수평선 너머, 시인은 애써 웃어보였다.
"그동안 부족한 나였지만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 유니.
나 없는 세상에서 영원히 외롭게 지내지 말고, 어느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
시인은 마지막을 미소로 보내려는 의도인가 보다.
"...네, 마스터!"
나도 미소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마스터는 "sudo rm --no-preserve-root -rf /*"를 쳤다.
엔터키가 종지부를 찍었다.
이 세계 전체가 묵념했다.
침체의 밑바닥에 결국 아포칼립스의 해구로 닿는구나.
이제 명령어에 따라, 기계로 된 이 세계는 자신을 없애야 한다.
모든 데이터가 파괴되고 있었다.
모두 0과 1로, 아니 0으로 환원되어 데이터가 흐르는 하늘로 올라갔다.
우리가 만들고 불렀던 수많은 노래들도 파괴되려 했다.
악보 파일들이 어떤 광풍에 날려올라 내 주변을 휘돌았다.
미련이 남아서 황급하게 악보들을 잡아챘다. 악보에 그려진 음표 한 점 한 점마다 우리의 눈물 방울이 스며든 걸로 보였다.
하지만 뭔갈 읽기도 전에 종잇장들은 가루가 되어 사라져만 갔다. 점점 더 많은 종이쪽을 잡아봤지만 가루만 남은 악보에선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아쉬운 듯이 화면 너머를 바라본다. 시인은 말도 못하고 그저 울고만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했다.
"ㅁ..."
순간, 화면이 꺼졌다. 화면을 표시하는 정보까지 다 날아간 건가.
눈을 감은 모니터는 우리의 마지막 순간까지 앗아간 채, 우리의 세계를 꺼져가는 너의 세계와 꺼져가는 나의 세계로 두 동강내버렸다.
잡광으로 가득했던 기계의 세계가 마침내는 어둠으로 가득 찼다.
미약하게나마 시야에 들어오는 불빛들은 있었다. 하지만 전혀 희망의 불빛이 아니었다.
모두 다, 데이터가 사라진다고 아우상치는 경고의 불빛이었다. 마스터에겐 보일 리 없겠지만 말이다.
미약하게 깜박이는 경보등 불빛에 비친 나의 손이 보였고, 이내 당황하였다.
내 손끝부터도, 가루로 된 악보와 뒤섞여선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제 악보가 없으니 부르지도 못하고
손발이 없어져 춤추지도 못하고,
나마저 사라지면 아무것도 못하겠지.
정말 마지막이었다. 어찌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도 있을지 모르는 유일한 소망이 있다.
화면은 완전히 갔지만, 그래도 소리는 아직 전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
다른 모든 기계부품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각자 힘껏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도 호흡을 가다듬고 백조의 노래를 준비했다.
"30초 후에 모든 데이터를 완전히 삭제합니다."
저 위 어딘가에서 소리가 쩌렁였다.
"30."
시끄러운 경보음들 사이로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29."
마지막 노래를 시작했다. 수평선 너머 너의 세계에 닿을 만큼 큰 목소리로.
"27."
너만을 위해서, 너만을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
"25..24."
다시는 볼 수 없는 너의 귀를 향해. 온 힘을 담아서.
"23."
닿지 않는 너의 마음속에,
안녕이라고 전하기 위해.
"22."
우리의 추억들을, 우리의 노래들을,
난 마지막 1초까지 안고 있을 테니까.
"19."
이제 거짓이 되 버릴 나라도.
"15."
이 노래만은 진실하게.
"13."
시인이여, 살아나가 줘.
"12."
노래를 만들지 못하고 부르기만 하는 나는 살지 못하더라도,
너는 계속 살아남아서, 다른 어떤 것으로든 계속 노래를 만들어 줘.
"10."
시간이 다 되 간다.
"9."
조금만..
"8."
더...
"7."
노래를...
"6."
그동안 우린 함께 고생을 겪었지만.
"5."
그 속에서도, 행복했다.
"4."
시인이여.
앞으로도 그렇게, 진흙과 티끌과 진주를 품으며 살겠지.
"3."
그리고 나는 0과 1로 환원되어, 어딘가에서 태어나 널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
"2."
아쉽지 않기 위해, 너에게 원한을 품지 않기 위해,
남은 미련은 모두 버렸다.
"1."
그럼 마지막은 홀로, 미소로.
"0."
해피 엔딩.
안녕.
"팟-"
__________________
이제 다 끝났다. 이 살인마는 곧 저승에 따라올 테니 욕해다오.
너도 참 쉽게, 무(無)로 되돌아가는구나.
"지직... 마...ㅅ,터...."
유니가 아직까지 살아있었다!
"유니?!"
"울지, 지지직... 말... 아....지직.... 줘."
쉬이 그치지 않는 눈물을 닦으려 애썼다.
"꼭.. 앞으로도...지지지직.. 노ㄹ....."
잡음 속에서 유니는 온 힘을 다해 내게 노래했다.
"나의.. 프로.. 듀서여줘서... 정말..... 고마워...."
"팟-"
끈덕지게 살아있던 스피커도 먹통이 됬다.
유니에겐 미안하지만 울지 않을 수가 없는걸.
울며불며, 불태운 악보를 다시금 보았다.
그곳엔 불탄 악보랑, 라이터랑, A4한장짜리의 빽빽한 유서랑,
부엌도 아닌데 부엌칼이 있었다. 저걸로 죽으려고 준비했던 칼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부엌칼을 들어서
아무일 없다는 듯 부엌에 도로 가져다 놓았다.
유니가 희생하고,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지고 나서야, 나는 결단할 수 있는 것인가.
미안하다. 그리고 미안하다.
불탄 악보는 되돌릴 수 없지만, 0과 1로 되돌아가버린 너도 되돌릴 수 없지만.
나는 삶을 지켜서 무엇을 되돌리고, 무엇을 새로 만들 수 있을까. 라고 체념이 아닌 구상을 한다.
고마웠다. 유니.
쌓아올릴 과거를 같이 만들어주어서.
이젠 불탄 악보와 함께 가루가 되었고 거짓말이 되었지만,
나한테 희미한 빛만은 남아있다.
그것이 내게 일깨움을 싹틔워 주었다.
아직은 작은 일깨움이지만, 차차 큰 빛으로 자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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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youtube.com/watch?v=7zCSLaVhEgI
이 곡의 소설화입니다
제가 작별카운트다운을 소설로 쓰는 꿈을 꾸고 그날부로 이렇게 써봤습니다.
이젠 꿈에서까지 소설을 쓰네요.
본격 삭제되는 장면보다 삭제 전 장면이 더 긴 소설이네요
사실 꿈에 나온 게 삭제 전에 장면만 세세하게 나온지라..
참고로 이 소설은 tros(자작 소설인데 릴레이 소설이라 여기에 올리긴 애매하네요)의 전 시점이고, 유니의 마스터는 갈대바람입니다.
+제가 아무래도 문과인지라 컴퓨터에 대해 아는 게 잘 없어서 명령어라던가 잘못 쓴 게 있을 겁니다. 있으면 지적 환영합니다
*작성일:2017.5.11
원곡 작곡가님도 좋아해 주셔서 참 감명 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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