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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문학/소설,스토리,동화 등

식맹(食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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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가 쓰다.혀뿌리부터 세제를 머금은 듯 맹맹함이 떠나질 않는다. 그나마 맛처럼 말하자면 종일 깻잎 뒷면으로 혀를 긁고 있는 맛, 이려나.

처음엔 단지 잠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만 더 잠들어도 마찬가지다.

아침밥은 먹고 있다. 이것도 안 먹었으면 좋겠지만 안 먹겠다 하면 걱정하면서 계속 먹으라 하니 어쩔 수 없다.
식사는 아무 맛도 안 난다. 아니 내 침조차 쓰니깐 모든 게 다 쓰다. 물조차도.

한두 술밖에 뜨지 않은 밥이었지만 속이 미식거려 다 게워내 버렸다.

지금은 점심시간. 아니 나는 점심을 안 먹으니 무슨 시간이냐.
뭐 덕에 시간은 벌었다. 하지만 공부가 손에 잡힐 린 없다.

작사를 하자고 펜을 들었다. 하지만 글씨가 자꾸 이중으로 보인다.
작사를 해야 하는데, 유작을 남겨야 하는데...
내가 피곤하긴 한가보다. 눈이 쉬어야 작사하게 해주겠단 모양이다.
그래, 밥보단 잠이다. 잠시 엎드리자.

벌써 예비종이 치다니, 빨리 일어나서 잠깐 작사하고 수업 준비해야겠다.

'...?'
고개가 들어지질 않는다. 뭔가가 고개를 누르는 것 같다.
'누구야?'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손을 휘저어 보려 해도 어깨와 이마의 무게가 팔을 고정하고 있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아사히나 학생?"
그제야 선생님을 볼 수 있었다.
"얘가 잘 애가 아닌데... 일어나시죠?"
'저, 일어났습니다만...?'

어라, 왜 아직도 목소리가 나오질 않지?
다시 의식하고 보니 어째서인지 난 엎드린 자세 그대로였다.
몸이 저릿하게 잠겨서 꼼짝할 수 없다. 힘을 아무리 보내도 전해지지 않는다.
모르핀은 약효가 끊기면 자기 체중에도 짓눌려 고통을 느낀다는데,
내 머리의 무게가, 내 어깨의 무게가 내 머리와 등을 짓눌러서 꼼짝없이 수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여전히, 시야만은 교실을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은 전부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학생들의 시선은 파란 화살표로 나를 일제히 쏘았다.
웅성웅성, 수군수군.
뭐라는진 몰라도 학생들의 입에선 확실히 파란 화살표들이 흘러나왔다.

화살표들이 흐르고 흘러서 바다를 이뤄간다.
교실엔 물이 차오른다. 나는 물이 차가워 그저 웅크리다 바위가 되었다. 바위는 헤엄칠 수 없어서 나 혼자 가라앉는다. 도와달라고 손뻗을 수도 없다. 도와달라고 해도 목소리가 나오질 않으니 아무도 날 모른다.
숨이 차올라, 목이 부어올라서 기도가 막혔다.
육지로 올라온 고래처럼, 폐가 내 등의 무게에 눌러서 숨을 쉴 수 없었다.
이대로 온 몸의 힘이 다 빠지면...

"마후유!"
"으윽으....흐어억...헉...."
그토록 주었던 힘이 쿵, 하고 무너지는 느낌과 함께 드디어 깨어나 버렸다.
수업 시작한 지 한참 지났거든, 너도 참 실망이다. 라고 시계가 가장 먼저 말했다.
손이 저려서 움직이는지도 모르고 이리저리 부딪히며 책을 뒤졌다.

 

 


망신뿐인 하루였다.
왜 하교 시간은 하필 해질녘인지, 매일 해가 제 피에 잠기는 걸 차마 볼 수 없었다.
서쪽으로 가긴 싫은데.

돌아갈 길도 없는 노릇이니, 어디로든 시선을 돌리며 해가 몰락하는 방향을 따라 걸어갔다.

양 옆으로 식당들이 즐비했다. 여기저기서 꾀이는 냄새는 남의 잔치에서 나는 잡음이었다.
텅 빈 머릿속에, 각종 먹을 것 생각이 폭포처럼 흘러간다.
그럴 때마다 반대편에서 나를 때리는 목소리.

-곧 죽을 녀석이 먹어서 뭐해. 돈만 버리겠네.

>이미 신디사이저도 버렸는데 뭘 못버리겠냐. 그래서 수족관도 버리고 다 버렸잖아.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는데, 최후의 만찬 정도는 먹자.

 

목소리가 울리는 쪽으로 왼쪽, 오른쪽,

앞으로 간다는 게 자꾸만 갈 지(之)자로 흔들린다. 간판도 못 읽는 시야도 따라서 빙빙 흔들린다.

 

-참 성가신 본능이네. 아직도 살고 싶은 거야?

>어차피 굶어 죽을 수도 없는데. 계속 굶다 보면 몸이 무의식중에 쓰레기라도 먹을걸.

일단 집에까지 갈 힘은 있어야지. 제발 한 그릇....

-집에 가서 뭐하게. 집도 싫잖아. 참 오래도 살아 있겠다.

 

갈 곳도 없는 녀석이.

'털썩'

순간 허벅지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이 넓은 도로 한복판에.

'으으...'

일어날 기운이 없다. 아니 기운이 없다기보단 일어날 기분마저 안 난다.

그래도 이 모습을 남에게 들키면 그땐 완전히 무너지는 거야. 일어나야만 하는데...

침대를 벗어나듯 억지로 일어나보려고 근육을 떠는데, 나에게 손이 다가왔다.

 

"마후유."

시즈쿠다.

안간힘마저 무너져 내린다.

"....."

절규할 힘조차 없다.

 

"여기 계속 앉아 있으면 위험해. 내가 일으켜줄게."

이미 위험은 왔지만.

시즈쿠는 힘껏, 나의 송장을 끌어 일으켰다.

 

"점심시간에 밥도 안먹고 쓰러져 있다고 들었어. 걱정되서 방과후에 찾아가 보려고 했는데 못 찾겠어서 그냥 오던 길이었는데..."

"...많이도 알고 있네."

"병원이라도 가봐야 하지 않을까..."

"뭘 이런 걸로 병원을 가. 어차피 몸 챙겨봤자 얼마나 더 살 거라ㄱ..."

그러고 보니 남들 앞에서 짓던 표정조차도 하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니다. 암튼 알아서 할게." 

야, 이제 완전히 무너졌구만.

 

"점심도 못 먹었을 텐데, 같이 우동이라도 먹으러 갈래?"

"괜찮아."

아이돌 활동하면서 한 끼라도 굶으면 영 안 괜찮다는 걸 알고 있는 시즈쿠, 뭐라도 먹이고 싶었다.

"아, 이치카가 협찬 받았다고 포카리스웨트 많이 주던데 이거라도..."

"아무것도, 마시고 싶지도 않은걸."

"너 설마 살기 싫은 거야?"

시즈쿠는 농담에 가깝게 말했겠지만 그 설마에 정곡을 맞았다.

"하하..."

화제라도 돌려야 하는데 머리가 안 돌아간다.

"뭐, 다이어트 한다고 굶지는 말고. 요요 온다니까."

 

그 뒤에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어찌저찌하다가 혼자 집에 왔다.

"다녀왔습니다."

"저녁으로 우동 먹을래?"

"궁도부에서 모임 있어서 부원들이랑 먹고 왔어요."

"그 동아리는 시험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모임을 하냐..."

 

잔소리 각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화낼 일도 아닌데, 오늘 충격을 너무 많이 받은 탓인지 빡침이 확 밀려온다.

"친구를 만나는 건 좋지만 네 진로엔 방해되지 않게..."

"방해받을 제 진로가 있기는 하던가요?"

 
"...그게 무슨 말이니?"
아 젠장. 이젠 엄마 앞에서까지 본심이 나와버렸다.
말실수라고 둘러대려는데 알러지처럼 구토감이 올라와 변명조차 못하고 화장실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먹은 것도 없는데 뭘 게워내겠다고, 액 액 하는 소리를 죽여봤자 토해낸 것은 기력뿐이었다.

머리가 텅텅 흔들리더니 시야가 계속 돌아간다. 피가 제멋대로 흘러간다.
꼭 큰 일들은 한방에 터진다니까. 밖에 나가면 차마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 화장실에 있을 순 없어서 결국 나온다.

엄마가 처음으로 예전에 본 에무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 이젠 진짜 감당 못하겠다.
"...저 몸살기 있는 거 같아서, 방에 들어가 볼게요."
"ㅇ,응...."

방으로 숨었다. 머리가 계속 조여와 아무것도 못하겠어서 눕고 만다.

몸살 때문에 방에 있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긴장이 풀리니 정말 몸살기가 느껴졌다.

"으으..."

사지는 쑤시고, 몸 속 어딘가는 배가 고파서라기보단 그냥 아프다고 아우성이었다.

저녁쯤에는 그리도 먹을 거 생각이 흐르더니만, 이제 배도 지쳤는지 고프다는 소리를 안 한다. 식욕이라도 잡아먹은 것 같다.

문득 고개를 돌렸는데 하필이면 거울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볼살이 꽤 빠졌다. 최근 남들이 살빠졌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썩 달갑지 않다.
뭐, 좋은 점도 있네. 달릴 때 전보다 몸이 가벼워졌다고 느끼기도 하고.
남들이 이쁘다 하든 무섭다 하든, 거울 속에서 나를 보고 있는 건 죽이고 싶은 말로일 뿐이었다.
고개를 도로 돌렸다. 이대로라면 또 악몽을 꾸겠지만 잠이 공격해 오고 있다. 질 수 밖에 없는 싸움. 저녁때처럼 날 괴롭히는 그 목소리의 공격을 받아가며, 오늘도 나는 이불 속에서 간간이 몸을 움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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