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마음이라고 했던 마후유.
그녀가 사라지기 전에 마후유가 진짜 자신을 찾는 걸 도와줄 곡을 만들고 있었다. 처음엔 그런 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얘가 아직 구원받으려는 마음은 놓지 않았구나 싶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소식은 모두에게서 점점 뜸해져 갔다. 진짜 사라질 것 같아서, 사라져가는 눈발을 잡듯이 서둘러 곡을 만들었다.
먹는 건 물론이요 눈이 5초 이상 붙어있으면 다급한 경보가 자꾸만 들려와 다시 작업을 했다. 귀도 슬슬 맛이 가서 음악을 멈춰도 계속 들리는 듯한 최악의 작업환경.
몸은 채찍을 맞다 못해 쓰러지며 이렇게 말했다.
모두를 영웅이 되려고 한 행동이 모두를 괴롭힌다면 그런 영웅은 없는 게 나아.
---
의식이 돌아왔지만 눈을 뜨지 않았다. 이대로 영원히 잠들기를 바랬었다.
땅바닥이 따듯하다니 여긴 사후세계인 걸까. 다시 영영 잠들려다가 바깥이 너무 궁금해서 눈을 떴다.
미쿠가 날 보며 펜을 쥐고 있었다. 그러다 깜짝 놀라 펜을 치운다.
"미쿠...?"
"어...깨어났구나. 정말 미안해. 여기 너무 할 게 없어서..."
그렇다고 쓰러진 사람한테 낙서를 하냐.
"뭐, 맨날 혼자 있으니 얼마나 심심했겠어. 여기 거울 없나..."
두리번댔는데 의외로 예쁜 손거울이 있었다. 집어다가 얼굴을 지웠다.
"너 며칠 동안이나 쓰러져 있었어. 네가 너무 무리하니까 세카이로 부르려고 메일로 untitled를 계속 보냈는데 안 봤나. 결국 쓰러진 널 내가 데려왔어.
에나랑 미즈키가 카나데 너마저 연락이 끊기니까 언젠가 깨길 바라면서 간간이 와서 너 살펴보고 이런 것들 놓고 가더라."
죽이랑 과일, 과자, 예쁜 옷, 그림 등등 각종 물건이 내 주위에 놓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손거울도 미즈키가 가져온 것 같다.
"세카이에서 굶어죽진 않는 거 같다지만 지금이라도 병원에 들고 갈까. 내가 업을 수 있으니까..."
"카나데 집을 찾아가야 카나데의 untitled를 멈출 수 있지 않을까..."
멀리서 에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쿠한테 부탁하면... 어? 카나데! 드디어 깼구나!"
에나랑 미즈키가 뛰어왔다.
"무사해서 다행이야ㅜㅜ"
"그 동안 얼마나 기다렸다구ㅜㅜ"
둘이 번갈아 가며 날 얼싸안았다.
"미쿠한테 얘기 들었어. 둘 다 정말 고마워."
"우리 없는 동안 미쿠도 종일 간호해 줬어."
낙서도 했단 건 넘어가자.
미쿠가 건네준 죽을 받아들고 천천히 마시는데 미즈키가 말을 꺼냈다.
"인터넷에도 네가 몸이 아파서 당분간 우리 팀 쉰다고 해 뒀어. 그림이랑 영상만으론 곡을 만들 수 없으니까.
완전히 괜찮아질 때까지 여기서 충분히 쉬다 가자. 인터넷에서도 다들 걱정하면서도 너 보고 푹 쉬래."
"응...근데 마후유는?"
"......"
에나가 넌 이 상황에서도 마후유부터 찾냐고라도 말할 줄 알았는데, 모두 말 꺼내길 머뭇거렸다.
"마후유가 이 세카이에 한 번도 안 왔어. 카나데가 쓰러지기 전부터도 계속..."
"그 동안 세카이에 계속 있을 줄 알았는데?"
미쿠가 숨겨왔던 걱정을 얼굴에 드러낸다.
"이젠 연락도 안 받는다니까."
"유키도,OWN도 활동이 없어. 마후유를 봤다는 사람도."
"......"
쥐 수만 마리가 혈관을 타고 날뛰며 날 감싸오른다.
"우으으..."
목이 붓는 느낌에 온 몸이 숨이라도 막힐세라 떨린다.
"진정해, 카나데."
"왜 난 남을 도우려 할수록 남들을 수렁에만 빠트리는 걸까... 결국, 사라진 거겠지...?"
"글쎄."
미쿠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마후유가 사라졌다면, 마후유의 마음도 모두 사라졌을 거야. 그럼 이 세카이가 남아있을까?"
"모르지."
에나가 말했다.
"무심결에 오빠 앞에서 세카이에서 있었던 얘기를 한 적 있는데, 오빠도 세카이를 알더라. 세카이가 생각보다 여러 개 있는데, 진정한 마음이 다 이뤄져도 세카이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있었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몸은 사라져도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고도 하잖아."
"..."
우리는 그저 멍하니 앞만 보았다. 당연히 아무것도 없다. 아마 마후유의 마음처럼.
"좋게 생각하자구. 그냥 쉬고 있는지도 몰라.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나면 돌아올지도."
어쩌면 저 앞에, 보이지 않을 만큼 먼 곳에서, 마후유가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쉬고 있을지도.
진정한 자신을 찾기라도 한다면, 우릴 찾으러 오지 않을까?
"그냥 쉬다 올 거면 말이라도 좀 하고 잠수탈 것이지...
말할 새도 없이 뭔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냐고."
"뭐, 우리끼리 이래저래 생각해봐야 어쩔 수 있겠어? 혹시 돌아오면 그 때 생각하자구. 카나데도 드디어 깨어났는데 축하 파티라도 하는 거 어때?"
그 동안 세카이에 모인 과자로 간소하게나마 파티를 열었다. 미즈키가 억지로 나한테 공주님 같은 옷을 입히고 머리를 묶은 게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 옆에서 에나는 신나게 날 찍고 있었고.
정작 가장 좋아하는 건 미쿠였다. 평생 가장 떠들썩한 순간일테니.
마후유도 이 떠들썩한 소리를 듣고 찾아와 주었으면.
---
예전에 마후유를 위해 만들던 그 곡을 업로드한지 이틀쯤 지났다.
처음엔 계속 만드는 게 의미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마후유가 계속 나이트코드에 있었던 건 우리를 믿어 준 게 아닐까.' 라고 미즈키가 그랬다.
미쿠도 마후유는 늘 구원받고 싶어했으니 아마 지금까지도 내 노래를 계속 기대하고 있을 거라 했다.
어쩌면 마후유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진정한 자신을 찾거나 구원받을지 몰라.
그런 마음으로 노래를 완성했다.
영상에는 그리움이 배인 일러가 흘러간다.
노래를 만들면서, 마후유보다는 진정한 내 모습을 더욱 들여다 보는 느낌이었다.
마후유를 보내는 장송곡처럼 만든 노래였지만, 사람들은 그 곡이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진정한 자신에 대한 덧글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라면 과한 영웅심리겠지만,
자신을 찾아가는 지침 정도는 되어줬구나.
간만에 아무도 없는 세카이에 들어가 봤다.
미쿠를 찾고 있는데 군데군데 이 빠진 신디사이저 소리가 들린다.
따라가보니 미쿠가 오래된 신디사이저를 치고 있다.
"그 신디사이저도 처음부터 있던 거야?"
"글쎄. 최근에야 돌아다니다 발견했어. 마후유가 사라지기 거의 직전에, 엄마가 신디사이저를 버린다고 나한테 말했어.
어쩌면 그 때 버리기 전에 여기로 갖다 놓았을지도."
미쿠는 아직 우리가 들어본 적 없는 노래를 계속 연주하고 있었다.
'창작 문학 > 소설,스토리,동화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에게 음식이 덮친다면(가제)> 구상 (0) | 2021.02.01 |
---|---|
미완성, 미공개 소설(구상, 초안, 미완성본 등) 모음 (0) | 2021.01.27 |
메이코의 카페 (0) | 2020.11.13 |
식맹(食盲) (0) | 2020.11.09 |
그린세이버+ 2화- 빙하의 정령곰 (0) | 2020.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