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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문학/시

내가 없을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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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은 피어나겠지
벚꽃잎이 떨어진 동백꽃을 덮어주고
터쿼이즈 색 파도가 푸른 땡볕을 빚고
지금처럼 초목이 빨간 눈물을 떨구겠지
내가 없을 때에

다시 일상은 돌아오겠지
다시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고
축제도 행사도 식당도 노래방도 오락실도
마음껏 갈 수 있겠지
내가 없을 때에

하고 싶었던 게임들이 나온다지
올림픽이 열릴지도 모르지
지금 보는 드라마의 결말이 나겠지
내가 없을 때에

가고 싶었던 놀이공원이 완공되겠지
작문 과제에 그린 미래도시는 완성되고
숨을 일 없이 살 수 있게 되겠지
내가 없을 때에

모두들 당연한 예정을 그릴 때마다
괜스레 발목이 잡혀 떠날 수 없다
욕하면서도 다음 화를 기다리는 드라마처럼
다음 화가 나올지도 알 수 없는 시대이건만

그렇게 천 날 밤 동안 죽이질 못했다
이번 가을도 다 넘어가는데
살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땅거미처럼 나를 쫓아오는데

다들 아무일 없다는 듯 지나가면 된다
벚꽃을 보고 축제에서 노래하고
학교를 가고 직장을 가고
올림픽을 보고 놀이공원에서 놀고
미래도시는 하나둘 세워지면 된다
나만이 없는 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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