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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문학/소설,스토리,동화 등

긴머리 백설공주~세번째 세상의 페어리테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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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랑 이시오 선생님이 예전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적어보는 게 좋다고 해서 생각나는 대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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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원래 까맣다. 적어도 우리 시골 마을은 그랬다.
나는 시커멓게 몰린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밤의 별처럼 눈에 띄게 하얬다.
그 때문에 파란만장 기기묘묘한 일을 많이도 겪었다.

사람들은 창백한 나를 무서워했다. 엄마도 무서워했다. 사랑한다고 하고 잘 대해줬다.
다른 사람들은 까매서 부러웠다. 땡볕을 맞아도 끄덕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색은 까만색이다.

우리 마을엔 하얀 사람의 몸이 병을 치료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어느날 어떤 아저씨가 갑자기 내 새끼손가락 한 마디를 잘라갔다.
아파서 막 우니까 엄마가 달려왔고, 아저씨는 도망갔다.
엄마가 쫓아가는데 험상궂은 사람이 아저씨를 덮쳤다.
아저씨랑 험상궂은 사람이랑 막 싸우다 아저씨가 손이 잘렸다.

그 후, 엄마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마법의 힘을 가진 아이라고.
그래서 내 몸을 아프게 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거라고 했다.
내 손가락을 자르는 사람은 손을 잃을 거고,
내 발을 자르는 사람은 다리를 잃을 거라고.

사람들은 무서워하면서도, 뭔가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엄마가 또 말했다.
대신에 머리카락은 잘라도 안 아프니까, 필요하다면 내 머리카락은 얼마든지 잘라줄 테니까 함부로 뽑아가지 말라고 했다.

그 후로 엄마는 내 머리가 자랄 만하면 잘라다 팔았다.
손발톱도 깎으면 따로 모아다 팔았다. 귀찮고, 깎자마자 때 끼면 찜찜하긴 한데 머리카락 자를 때보단 덜 허전하니까, 손발톱만 자르면 좋은데.
그래도 내 덕에 나았다는 사람들이 사탕이나 인형을 주기도 해서 좋았다.

머리가 아직 덜 길었던 어느 날,
가장 친한 친구가 많이 아파서 죽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머리 자르는 날은 멀었지만 엄마한테 머리를 잘라달라고 해서 친구에게 줬다.
까까머리가 되겠지만 내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니까.
애들이 여자애가 까까머리라고 놀리는 건 화가 났지만 친구 얘기를 해 줬더니 대부분은 그만했다.

며칠 뒤, 다행히 친구는 병이 나았다.
친구 엄마가 고맙다며 우리 집에 작은 TV를 놓아 줬다.
땡볕 때문에 집에서만 놀던 내게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TV는 신기했다. 저 멀리에 더 많고 넓은 세상이 있단 걸 알았다.
또 신기한 게 그림도 움직였다. 그게 만화영화란다.
내 별명 중에 하나가 백설공주였는데 그것도 만화영화에 나오는 공주였다.
내 머리는 은색인데, 백설공주는 까만 머리에 하얀 피부라, 까만 머리에 까만 피부도 아니라서 어느 쪽인지 이상하다. TV엔 워낙 다양한 사람이 나오니 그런 사람도 있으려나.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만화영화는 라푼젤이다.
라푼젤 머리카락이 엄청 길어서 인상깊었다.
라푼젤도 나처럼 머리카락에 마법의 힘이 있다.
다른 점은, 라푼젤은 머리카락을 자르면 힘을 잃는다.

그때 아직도 덜 자란 머리를 빗으며, 라푼젤을 부러워했다.
사실은 더 큰 마법의 힘을 낼 수 있는데 머리를 잘라서 마법이 약간밖에 안 나오고 있는건 아닐까?
그냥 내가 머리를 길러서 그 힘으로 병을 낫게하는 마법을 쓸 순 없을까.

그래서 다음에 머리 자르는 날,
엄마에게 머리를 안 자르는 게 낫지 않겠내고 말했더니 엄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당장 아픈 사람들이 있으니 머리카락을 나눠줘야 하지만,
내가 자라면 똑똑한 머리로 의사가 되든,
머리랑 몸에 담긴 마법의 힘을 쓰는 주술사가 되든 해서 직접 병을 낫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TV를 켜고 머리를 잘랐다.
TV엔 아틀란티스란 데가 나왔는데 두 발로 걷는 동물들이 가득했다.
내가 저기 가고 싶다고 했더니 엄마는 언젠가 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이제 엄마의 말은 모두 이루어졌네.
슬프게도 내가 예상한 모습대로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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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지>와 앞으로 쓸지 안 쓸지 모르는 그 후속편과 연결된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 내에선 이름이 안 나오지만 주인공의 이름은 <아우라지>에서 "홍단아"로 나올 거에요.
홍단아 프로필은 곧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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