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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문학/시

비 그친 구름에게 작성일 2017.12.24 20:26 ---------------------------------- 비가 그쳐줬네요. 이제 좀 나아지셨나요. 아깐 제가 덩달아 울 뻔했지만. 눈이라고 생각하고 보냈죠. 같은 물이라면. 이제 잠들 준비를 하고 있나요. 다른 이들도 울고 있을까, 밤에라도 몰래 날아가 위로를 선물하고 싶어요. 메리 실버 크리스마스. 더보기
이상한 나라의 숲 팔손이엔 쓰레기가 꽉 찬 호박이 열리고 팔손이꽃이 진 계절이라 파리들은 도심의 열매를 찾는다 카페 옆 벚나무엔 투명한 종이 열리고 단풍나무엔 비닐 유령이 걸려서 바람을 잡아 바스락 바스락 돌 평지 위엔 흑당 버블티가 자라난다 파인애플이 어디서 나는지 모른다는데 땅에서 나는 건 아는지 나란히 놓였다 흑당 버블티 옆에 파인애플 사탕 봉지 타들어가는 속에 굴뚝이 되는 멸치들이 블럭 위에 썩지 못해서 보리처럼 밟아주다 부딪힐 뻔한 나무는 검은 덩굴이 늘어선 회색 나무 초록색 잎에 붙은 외로운 편지가 요란하게 헐벗고 사람을 꾀고 있었다 발신인도 없고 폐지수레도 겨울잠 자러 가고 없어서 홀로 마음 없는 사랑을 전하는 일벌이 되어 쓰레기통까지 날아간다 쓰레기통 안은 한우리 투명한 플라스틱꽃 비닐꽃 바스러진 종이꽃 벽.. 더보기
밤길 시간은 파아란 하늘 검은 숲길. 새들은 날개로 천막을 펴 들어가고 달은 밀고 당기는 중간에 있고 별구멍 하나하나 오르골이 되어 어둠 속으로 향하는 멜로디 --------------------- 작성일 2019.05.16 03:29 꿈에서 죽은 사람이 적었다는 시를 보고 재구성했습니다 더보기
공생 너의 들숨은 나의 날숨이 되고 너의 한숨은 나의 들숨이 된다. 너의 꽃에서 꿀을 먹고 너의 사랑은 어디든 닿는다. 너의 향기는 나를 치유하고 네 속을 파먹는 벌레는 나의 일용할 양식이 되고 벌레가 후벼판 구멍은 내 따스한 집이 된다. 너의 그늘은 건물의 그늘보다 시원하고 나의 노래는 그늘을 더욱 시원케 한다. 더보기
정벌 달의 뒤편에 소리없이 착륙해 노래로 백옥경을 지어 너 한칸 나 한칸 이어두고 비바람도 없는 천장에는 별을 깔아두고 뚫린 천장에 달린 푸른 창문으로 멀어서 평화로운 고향을 지켜보며 지구도 눈을 돌릴 만큼 아무도 알지 못하는 데서 태양보다 강력한 별들의 춤을 안방에서 강냉이 뜯으며 바라보며 고요한 사랑을 계속하리라 고 하려는데 이곳마저도 인공위성의 파편 두 개가 위성에 박혀 버렸다 더보기
모란이 피고 난 후에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겨울이라며 나의 봄을 기다린 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모란이 핀 적 있음을 빈 들에서 알아차릴 게요 장미는 살짝 덜 피어야 아름답지만 펑퍼짐한 몸뻬처럼 피어난 모란 얇은 팔로 몸짓하며 활짝 피어봤자 향기도 없어 나비도 꼬이지 않는 모란 하나의 몸짓이 아우성쳐도 그대에겐 소리 없는 게으름 요란한 꽃밭을 팔랑이는 그대 눈에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치지 못한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나면 그 뿐, 꽃 같은 열매도 계획 없던 듯이 꽃잎도 없던 듯이 쓸어내고 다음 모란도 같을까 깍지에 열매만 쥐어 볼게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또 주저할 게요 나도 몰래 또 피기까지는. 더보기
<세지(洗紙)> (*한시로 한역하기 전 버전입니다) 속시커먼 말을 담기 싫어서 옷에 묻은 먹물을 씻어 내렸다. 까막한 어리석음에 덮이기 싫어서 명필이 올 때까지 순백을 지켰다. 물에서 연마한 지 수십년이 지났다. 해마다 눈을 보기 전까진 내 몸은 아직도 희게 보이는데 내 색깔은 아직도 진짜 흰색인가? 더보기
연인에게 보내는 유품 너보다 늙은 내가 너를 차마 두고 가는 날 너에게 하나만 남길 수 있다면 너에게 우산을 주겠다 내가 가고 네게 매일 비가 온다면 잠시라도 비가 그치길 바라며 비 오는 날에만 날 펼치는 게 싫으면 너에게 손수건을 주겠다 우산 아래에 내리는 비도 뺨을 어루만지며 닦아 주겠다. 슬픔을 다 씻고 개인 날 빨래줄에서 햇볕 향해 손짓하며 달 빛 품듯 온기 머금어 널 싸매겠다. 손수건을 볼 때마다 울 것 같다면 드디어 더 이상 울 일도 없다면 이제 날 보내줘도 좋겠다면 나 한 장 바람에 날려보내 다오 넓푸른 하늘 어딘가로 숨어들며 언제고 너에게 손을 흔들리라 안녕히, 또 안녕.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