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문학/시 썸네일형 리스트형 「발에 채인다」 집정리를 하고 집을 나서려는데 우리 집 고양이가 발에 채인다. 고가품을 팔고 낡은 옷을 버리고 집을 나서려는데 우리 집 고양이가 발에 채인다. 쓰지 않은 가방 나누어주고 마르고 닳도록 써온 건 버리고 5살 때부터 지켜온 장난감도 버리고 집을 나서려는데 우리 집 고양이가 발에 채인다. 집 대청소를 하고 냉장고를 비우고 쓰레기를 비우고 컴퓨터의 메모리를 정리하고 집을 나서려는데 우리 집 고양이가 발에 채인다. 고양이 밥그릇에 사료를 잔뜩 채우고 물그릇에 새 물을 잔뜩 채우고 장난감을 천장에 매달고 상자에 담요를 깔고 문을 활짝 열어두고 집을 나서려는데 우리 집 고양이가 발에 치인다. 나도 고양이 담 넘듯 고양이를 넘어가는데 고양이가 도로 내 발 앞에 와서 몸을 비빈다. 더보기 음지바른 뒤뜰 병원 장례식장 뒤뜰 씨앗들 내려와 잠들다. 묻힌 씨앗들 위로 들국화들 피어난다 피지 못한 씨앗들 기리지도 않고 꽃잎 펴 들을 덮어 버린다 유족이 꽃 꺾어 무덤에 바쳐도 국화는 다시 피려 할 뿐이다 꽃가루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시들 때까지 아낌없이 앗길 뿐이다 모두가 지하로 가는 계절이 지나고 보리도 나지 않은 봄 싹도 없이 썩어진 씨앗들 먹고 쑥대밭이 싹을 가린다 아지매는 아무리 캐도 많다며 칼로 쑥 허리를 벤다 여름에 약간 심어놓은 열매가 열릴 때쯤 사람은 잡초를 뽑는다 풀들은 이름이 필요없다 시든들 이름이 없다고 사람은 기억지 못하고 잡초는 여전히 산다며 사람은 풀들을 멸한다 장례식장 뒤뜰 씨앗들 이곳에 잠들다. 더보기 지구 최초의 고백을 너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 이 좋은 세상에 나만 홀로 태어나 너무나 허전한 나머지 가슴 밑까지 허전한 날이 있었다 그 날에 너는 나를 만났다 나는 홀로 선 최초의 인간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간이니까 혼자일 것이다 너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 왼발과 오른발이 아무리 벌어져도 한쪽이 가면 따라 가듯이 네가 죄의 수렁을 밟아도 나는 따르리라 낙원에서 쫓긴다면 나도 나가리라 우리보다 외로운 들로 나가 땅 끝까지 우리들의 발길 닿도록 우리가 역사를 첫걸음 걸으면 모든 인류가 땅에서 쫓길때까지 우리의 후손은 계속 걸어가리라 너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 더보기 약탈경제 양의 털을 앗아 만든 옷을 입고 판잣집을 앗아 만든 집에서 나와 가족의 돈과 기대를 앗아서 탄 학비로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누군가의 집을 앗아 낸 길 위에서 앗는 것 없는 야인의 삶을 동경해보았다 어느 원주민이 앗긴 땅인지 모를 들에서 식물의 삶을 앗고 사는 삶 강의가 끝나고 학교를 나서면 노동력을 앗기며 살지 창업한다면 고객에게 마음을 앗기며 살지 모두의 땀을 앗아 세운 성벽 속에서 파도를 피하며 살고 있다 더보기 말을 머금고 너를 떠올리는 말들이 너무도 튀어나와 정리가 안 되서 입안에 함빡히 머금고 있다가 남 몰래 나 몰래 마른침과 함께 삼켜버렸지 입에서 백 마디 내뱉기보다 한 마디 입맞춤이 낫지만 나는 닿지도 못하고 말주변도 없어서 말 한 자 한 자를 고심하고 있지 목으로 도로 넘어간 말은 머리는 잊어도 속으론 담고 있는지 습관처럼 나와서 밥먹듯 넘기지 흐르는 마음 입안에 머금다 눈밭을 뒹군 찹쌀떡같은 널 보면 난 떡 먹은 벙어리가 되어 두 볼을 동글게 굴릴 뿐이지 더보기 한 마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남는 감각은 청각 들은 것은 나를 부르는 한 마디 가장 먼저 잊히는 건 목소리라 이름도 얼굴도 못 외우는 내가 한 마디 잊을세라 발을 구른다 너에 대해 아는 것을 맞춰 모아도 이 양이면 서울에서 김 서방 찾는 꼴 나는 그 동안 너를 그려오기만 했지 너 있는 곳 맞춘 걸음은 몇 자국이나 되던가 너를 알기 전도 그랬듯 난 홀로 팔랑인다 불빛에 눈이 멀어서, 계절풍에 쓸려서 너만 죽 맴돌면 실례일지 걱정되어서 널 찾으면서도 난 홀로 헤메인다 이 마음도 네 마음도 잘 모르는 채 기억 속 목소리가 변했는지도 모르는 채 설령 뭐 하려고 여기 왔는지도 잊는대도 날 부른 한 마디 붙잡고 팔랑이겠지 더보기 재출산 나에게 당신을 새겨줘 그래도 부족하니까 당신이 들어와 줘 내 안에 당신을 싹틔워 줘 그래도 당신과 하나가 될 수 없다면 마지막 입맞춤으로 당신을 들이키게 해 줘 네가 내쉰 숨결을 내가 들이게 내가 뱉은 숨결을 당신이 마시게 해 줘 그래도 배가 고프다면 내 뱃속에 당신을 들이게 해 줘 일신도 지킬 수 없는 당신이라면 당신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테니까 내가 당신의 몫까지 살아갈 테니까 그 몸을 맡겨줘 태고만큼 빠른 박동에서 뿜어 나오는 따스함을 나의 단심과 섞이게 해 줘 아침 식사가 끝나면 입가에 샌 온기를 닦고 당신의 고향으로 돌려보내 줄 테니까 나의 갈비뼈로 당신을 지킬 테니까 나의 온기로 품어줄 테니까 양분조차도 너에게 나누어 주고 당신의 숨도 대신 쉬어줄 테니까 어서 와, 나의 태내에 ________.. 더보기 아침달 새해의 아침해에 목욕하는 보름달. 우리가 마주하는 짧은 시간 말없이 바라보는 먼 공간 너의 밤을 살아가는 나 나의 밤을 살아가는 너 너의 삶 알 바 없어서 말 없어도 맞댄 등의 온기 세상이 등을 돌려 버리면 밤 종일 너의 온기를 안고 온 어둠에 너의 빛 베풀리 새해의 아침해에 빠져드는 보름달.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7 다음